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리더가 되십시오 기독교

리더십에서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많은 리더십 전문가들이 경청을 리더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으며, 실제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들은 대부분 경청을 잘 하는 리더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경청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경청이 어렵거나 경청하지 않는 리더가 많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
질문의 7가지 힘>이라는 책을 쓴 도로시 리즈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경청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1. 귀를 기울이려면 노력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자기와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없는 주제를 집중해서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만큼 주의력을 집중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 귀를 기울이는 훈련을 받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읽고 쓰는 기술에 대해서는 배우지만 듣기 기술은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 영어 듣기 평가와 같은 훈련은 특정 주제에 대해 잘 듣는 훈련이지 일반적인 듣기 기술 훈련은 아닙니다.

3. 집중하는 시간이 짧다

사회가 발전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주의력 집중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쉽게 설명하면, 라디오와 같이 듣는 것이 주요 오락거리였던 시대와 비교할 때, 인터넷과 TV를 이용하는 오늘날의 세대들은 현저하게 주의력을 집중하는 시간이 짧습니다.

4. 시간이 없다
귀담아 들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듣는 사람은 들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듣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낭비로 생각합니다.

5.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에 급급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충분히 설명하면 상대방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내가 말하는 것보다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자기 말만 많이 늘어놓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6.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귀를 기울여 듣다보면 서로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7. 보상이 없다

행동발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만! 일 어떤 행동에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행동은 반복되지 않는다고 합니 다. 따라서 말을 잘하고, 물건을 잘 팔고, 운동을 잘 하고, 공부를 잘 하면 보상이 따라오지만 잘 듣는 것에는 보상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듣기를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잘 들으면 자신에게 이득이 있는 경우는 누구나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경우에 해당됩니다.

귀담아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귀를 기울이면 상대방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질문도 상대방에 대한 나의 관심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런 마음을 더 강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존중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서 들을 자세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내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그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며, 인정받고,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2. 귀를 기울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무엇인지를 채 알기도 전에 진단하고 처방을 내립니다. 그래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중히 질문하고 그 대답에 귀를 기울여 듣다보면, 문제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3. 귀를 기울이면 좀더 현명해보일 수 있다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들은 일단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는 잘 듣지 않는 사람보다 성급하게 판단하! 거나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훨씬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현명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쉽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모습만으로도 그는 그 자신의 본 모습보다 훨씰 더 현명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쉽습니다.

4. 귀를 기울이면 실수가 줄어든다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뒤늦게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생각나는 것을 깨달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원인은 하나입니다. 충분히 귀기울여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전달하는 정보를 대충 들었기 때문에, 부족한 이해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조금만 귀를 기울여 듣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일단 자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말하는 상대방에게 내 시선을 향하고, 그의 말에 집중하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 壙?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말하려는 내용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의 감정을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으려는 경청의 자세를 갖게 되면 당신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리더가 될 것입니다.

[펀글] 오바마 미국 대통령 첫 의회 일반

오바마 미국 대통령 첫 의회 연설

입력시간 : 2009-02-25

하원의장님, 부통령님, 그리고 상하원 의원 여러분, 그리고 영부인.

오늘 저는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뿐 아니라, 여러분을 이자리에 오게한 국민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경제가 가장 큰 걱정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요.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 친구, 이웃, 가족들 중 누군가가 경기 침체로 신음하고 있을 겁니다. 굳이 통계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경제가 위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체감하고 있으니까요. 걱정으로 잠을 설치고, 눈을 떠도 걱정 뿐입니다. 평생 직장이라 생각했던 일자리를 잃고, 평생의 꿈이 걸려 있는 사업이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았지만, 진학을 포기해야 합니다. 경기 침체는 현실이며 그 영향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경제가 약하고, 신뢰가 흔들리고,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이것만은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재건하고 회복할 것이며,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나라로 다시 일어설 겁니다.

이번 위기의 중압감이 우리의 국운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문제의 해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연구실과 대학, 들판과 공장, 사업가들의 상상력과 근면 성실한 우리 노동자들의 자부심에 있습니다. 인류 발전과 번영의 원동력이 되어 온 이러한 미국인들의 자질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함께 힘을 합쳐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과감하게 대처하고, 미래를 위해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겁니다.

솔직하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정부로서든, 국민으로서든 말입니다. 결코 누구를 책망하거나 과거에 연연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현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을 이해해야만이, 이 역경과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가 하루 아침에 추락하게 된 건 아닙니다. 주택 시장 폭락과 주식 시장 붕괴로 모든 문제가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대체 에너지 개발 여부에 따라 국운이 좌우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원유 수입의존도는 여전히 사상 최고이고, 건강보험의 폐해를 알면서도 개혁을 미루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방치해놓은 채, 개인이나 정부 너나할 것이 없이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큰 빚더미에 앉게 됐습니다. 다시 말해, 당장의 이익을 장기적 번영보다 중시하고, 다음달 월급, 다음 분기, 다음 선거 그 이후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흑자가 생기면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 보단 부자들을 배불리는 데 급급했고, 당장의 이익때문에 규제를 돌보지 않아 시장이 피폐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돈을 빌려 집을 샀고 은행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돈을 빌려줘 부실을 키웠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은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하지만 이제 심판의 날이 왔습니다. 이제 미래를 위해 나서야할 때입니다. 과감하고 현명하게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경제를 회생하기 위해서, 항구적 번영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쌓기 위해서입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에너지, 건강보험, 교육에 투자를 해야합니다. 동시에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오늘 저는 이 같은 제반 경제 현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씀드릴 겁니다. 우선 일자리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취임하자마자, 대통령의 날까지 경제회복대책을 마련할 것을, 의회에 요청했습니다. 큰 정부에 대한 신념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물려받은 막대한 부채를 망각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더 많은 일자리를 잃고 더 많이 시련이 닥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한 것입니다. 사실, 행동하지 않는다면, 경제 성장 악화 장기화로, 적자는 더욱더 늘어만 갔을 겁니다. 그래서 신속한 행동을 요청했던 겁니다. 그리고 의회의 신속한 행동 덕분에, 오늘 밤, 마침내 미국 회복 및 재투자 법안이 법률로 제정됐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이 법안을 통해 350만개의 일자리를 보존, 창출하게 될 것이고, 이 가운데 90% 이상이, 도로와 다리를 재건하고 풍력 발전소와 태양전지를 만들고 교통 통신망을 확충하는 등 민간 사업 부문에서 발생할 겁니다. 이 법안 덕분에, 교사들도 해고 걱정 않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보건 관계자들은 아픈 사람들을 계속 돌볼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해고에 직면해 있던 미네아폴리스 경찰 57명도 계속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법안 덕분에, 미국 노동자 가구의 95%가 감세 혜택을 받게 됐고, 오는 4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갈 겁니다. 자녀들의 학비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서는 대학 4년 내내 2500달러의 세금 감면을 받게 되고, 경기 침체로 실직한 사람들은 장기 실업 수당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 또는 가정에서 TV로 시청하고 계시는 분들 가운데에는, 법안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분들도 계실 겁니다. 좋은 의도로 내놓은 제안이 실천되지 않은 채 돈만 낭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바, 그러한 회의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막대한 계획에는 그만큼 큰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저는 바이든 부통령께 감독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누구도 바이든 부통령에겐 꼼짝할 수 없으니까요.(제 말이 맞죠?)

내각 각료들과 전국의 모든 시장들과 주지사들에게 일렀습니다. 앞으로 쓰게 되는 돈에 대해서는 단 한푼이라도 그 내역을 설명하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또한 책임 감찰관을 임명해, 사기 사건이나 낭비가 감지될 경우 반드시 책임자를 색출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리커버리 닷 거브>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국민들의 혈세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마련한 경제 회생 계획은 경제를 정상화시키기위한 첫 단계이고, 첫 단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 계획을 완벽하게 이행한다할지라도 신용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경제 회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미국민들의 안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러분이 은행에 넣어둔 예금과 보험은 모두 안전합니다. 우리의 금융 시스템도 계속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문제는 신용 경색이 계속돼 자금이 돌지 않으면, 경제회복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로 돌아갈 겁니다.

신용 자금의 흐름은 우리 경제의 생명줄입니다. 대출을 받을 수 있어야, 가정에서는 집과 자동차를 사고,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고, 매장에서는 상품을 진열하고, 농가에서는 농기구를 사고, 기업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용의 흐름이 멈췄습니다. 주택 시장 위기로 인한 부실 대출은 은행의 부실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쌓이는 빚더미 속에서 신뢰를 잃게된 은행은 가계, 기업은 물론 다른 은행들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대출을 받지 못하면 가정에서는 집과 자동차를 살 수 없고, 기업은 해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는 더 큰 고통을 받고, 시중의 자금은 더욱 말라붙게 됩니다. 따라서 현 행정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신뢰를 회복하고, 자금이 다시 돌 수 있도록 신속, 적극적으로 대처할 겁니다. 그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동차 할부 대출과 학자금 대출, 그리고 중소기업 대출을 위한 대규모 정부 대출 기금을 마련해 경제가 돌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둘째, 주택안정대책을 통해, 차압위기에 처한 가정에 월 납입금을 감소시켜주고 모기지를 재융자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이는 투기꾼이나 부실 대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택 가치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실한 모기지 납입자들이, 낮은 금리의 모기지로 갈아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겁니다. 실제로 이들 모기지 대출 가정이 보다 낮은 금리로 갈아탈 경우, 연간 2천 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로, 미국 연방 정부는 만전을 기해, 주요 은행들이 경제 위기 속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대출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은행권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책임자를 문책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도록 하고, 부실 자산 정리를 지원하며, 미국인과 미국 경제를 지탱할 건전한 금융기관들이 생존토록 만들 겁니다. 물론, 월가는 조건이 수반되지 않는 공적자금을 기대하고, 무책임한 결정에 책임지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미국인과 미국 기업에 자금이 원활히 공급되는 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것이고, 이번 경제위기를 말끔하게 극복해나가는 겁니다! 저는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금융기관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이며, 기관들이 그 자금을 미국인에 대한 대출로 썼음을 증명토록 할 겁니다.

이번에는 결코 CEO들이 두둑한 보너스나 자신의 잇속 챙기기에 국민 혈세를 쓰지 못하도록 할 겁니다. 그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 계획은 연방 정부의 상당한 지원을 요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가 책정해 놓은 자금 이상의 돈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경기부양책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지만, 우리가 손 놓고 있다면 그로 인한 손실은 훨씬 더 클 겁니다. 우리 경제가 수 개월, 수 년이 아니라 10년 간 침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의 재정 상태와 기업, 미국인 한 사람 한 사람과 우리 미래 세대에까지 더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이런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 행정부가 부실 은행 지원안을 의회에 요청했을 때, 민주, 공화 양당에서 금융기관들의 부실경영과 그 여파에 공분했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도,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부실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얼마나 인기없는 조치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선 감정적 문제 해결에 나서거나, 정파적 결정에 따라서도 안 됩니다. 제가 할 일은 (박수), 우리가 할 일은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책임감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는 겁니다. 월가 경영진에게 보상을 줄 목적으론 한 푼도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직원 월급 지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기업, 모기지 지급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 가정을 돕기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것이 이번 경기부양책 법안의 본질입니다. (박수) 부실 은행이 아니라 미국인을 돕기 위한 겁니다.

부실 은행이 아니라, 미국인을 돕기 위한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대출이 다시 원활해지면, 젊은 세대가 신규 주택을 사게 될 겁니다. 기업도 신규 채용에 다시 나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를 얻는 근로자들은 소비 여력이 생기고, 대출을 받게 되면 차를 살 수 있을 겁니다. 자영업도 늘어나고, 투자자들은 다시 증시로 돌아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은퇴자금도 다시 확보될 수 있습니다. 서서히 신뢰가 회복되면서 우리 경제가 되살아날 겁니다.

저는 의회가 저와 함께,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든 취해나가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미국을 끝없는 침체 국면에 내맡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이 같은 엄청난 규모의 경제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미국의 노후된 규제 시스템을 정비하는 법안을 의회가 신속히 처리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지금은 우리 금융시장이 혁신과 적극적 추진력에 보상을 제공하고, 요행과 남용은 처벌하는, 상식이 통하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번 경기부양 및 금융시장 안정책은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가 추진하는 조치들입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일자리와 새로운 산업,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기 위한 장기적 투자를 통해섭니다. 21세기에도 미국이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석유 의존도 문제와 높은 의료보건비, 교육, 쌓여가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이는 우리의 책무입니다. 며칠 내로, 저는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예산안을 종이 위에 쓰인 숫자나 해야할 일 목록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미래의 청사진, 미국의 비전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예산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습니다. 우리 행정부가 물려받은 1조 달러의 예산 적자,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민주, 공화 양당은 각자의 중요한 우선순위를 조금씩 양보해야 할 겁니다. 저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장기적인 도전과제들을 간과할 순 없습니다. 일각에선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고, 정부는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경제 변천 과정에서 늘 과감한 조치와 원대한 아이디어로 대응했습니다. 남북 전쟁에선 대륙 횡단 철도를 놓아 무역과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산업혁명 과정에선 공립학교 시스템으로 새 시대를 준비했습니다. 세계 대전과 대공황 이후에는, 참전용사 법안으로 대학교육을 시키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중산층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유를 향한 투쟁의 과정에서 고속도로망 건설, 달 탐사, 기술 혁신을 일궈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정부는 결코 민간 부문을 대체하지 않고 장려했습니다. 수많은 기업가와 신규 기업이 적응하고 번성할 조건을 만들어줬습니다. 미국은 위기 속에 가능성을 보고, 시련 속에 기회를 만들어내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의 저력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예산안에 불필요한 프로그램을 줄이면서도,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3가지 부문에 대한 투자를 포함시켰습니다. 바로, 에너지, 의료보건과 교육 부문입니다.

첫번째는 에너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청정 재생 에너지를 주도하는 나라가 21세기를 이끌어나갈 겁니다. 중국은 자국 경제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역사상 전례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국이 태양열 기술을 발명했지만, 태양열 생산 부문에서 독일과 일본 등에 뒤처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하이브리드 차량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한국산 배터리를 이용하게 될 겁니다. 차세대 산업과 일자리가 미국 밖에서 뿌리내리는 미래를 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다시 주도할 때입니다.

우리의 경기부양책에 따라, 3년 내 재생에너지 공급이 배로 증가할 겁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초 연구 투자로 이뤄집니다. 기초 연구 투자는 에너지 분야 뿐 아니라 의학, 과학 그리고 기술 혁신으로 이어질 겁니다. 우리는 곧, 미국 전역의 도시와 마을에 신 에너지 송전망을 깔게 됩니다. 보다 효율적인 건물 및 주택 건설에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우리는 수십억 달러를 에너지 비용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경제를 변화시키고, 안보를 강화하고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청정재생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의회가 시장에 기반을 둔, <탄소 오염 총량제>와 재생에너지 장려책이 담긴 법안을 마련해 주시길 촉구합니다. 미국이 이 법안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풍력, 태양열 등의 기술 개발에 매년 150억 달러를 투자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첨단 바이오연료와 청정 화석연료, 고효율 자동차와 트럭을 생산하게 될 겁니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그간 잘못된 판단과 이번 경기침체가 맞물리면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업계가 저지른 부실 경영의 보호막이 돼줄 생각도 없고, 돼주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자동차업계가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비젼을 갖고 경쟁해 승리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걸려 있습니다. 많은 지역 공동체가 업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개발한 나라가 자동차업계를 저버릴 순 없습니다.

어떤 노력도 댓가 없이 이뤄지진 않습니다. 결코 쉽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이 어떤 나랍니까? 미국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면 뭐든 해 낼 겁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지나치게 높은 의료보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30초마다 미국 기업들이 파산하고 있습니다. 의료비로 올해 말까지 미국인 150만 명이 집을 잃을 수 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보험료 인상률은 임금 인상률의 4배에 달했고 그러는 동안 매년 백만 명이 보험 자격을 잃었습니다.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납니다. 미국 정부 예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의료보험 개혁을 미룰 수 없습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지난 10년 보다, 이 행정부 출범 이후 30일 동안, 우리는 의료보건 개혁에 더 많은 진전을 봤습니다. 출범 며칠 만에, 의회는 부모가 모두 일하는 가정의 자녀 천백만 명의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우리의 경기부양 법안은 오류와 비용을 줄이며 사생활을 보호하고 생명을 구할 신기술과 전자 의료 기록에 투자하게 될 겁니다. 이 시대 저를 포함한 거의 모든 미국인의 삶에 최대 적인 암을 물리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될 겁니다.

예방 의학 부문에 있어서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가 이뤄집니다. 비용 효율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산안은 그러한 개혁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포괄적인 의료보건 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역사적 과업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미국인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료보건 시스템 개혁은 아주 오래 전에 우리가 이뤄냈어야 할 과업이기도 합니다. 재정 적자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꼭 밟아야할 단계입니다.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에는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노와 사, 의료 종사자들과 의료보험 관계자들 그리고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을 한데 모아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할 계획입니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이 처음 개혁을 촉구한 이후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보험의 멍에가 우리의 경제와 양심을 짓눌러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건강보험 개혁을 늦출 수 없습니다. 1년이라도 미뤄서는 안되고 당장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가 대응해야 할 세번째 과제는, 교육의 혜택을 한층 확대하는 겁니다. 지식이 최고의 기술이자 수단인 글로벌 경제에서, 양질의 교육은 더 이상 기회가 아니라, 필수조건입니다.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직업군 가운데 3분의 2는 고졸 학력 이상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 중 절반 가량만이 그 요건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선진국들 가운데 고교 중퇴율이 가장 높고, 대학 중퇴자도 절반에 달합니다. 교육은 경제와도 직결됩니다. 지금 교육에서 앞서는 나라가 앞으로 경쟁에서 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 행정부는 이 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사회에 나설 때까지, 완전하고 경쟁력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을 국정 목표로 삼고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것만큼은 꼭 약속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펀글]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


선교란 무엇인가

-- 송용조 박사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선교단체협의회 한국선교총람



Ⅰ. 서론

 

     선교의 고전적 어의는 타문화권 전도였다. 그러나 오늘날 '선교'란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포괄적이며 애매한 용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선교는 '선교'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교에 관한 문제가 실제의 선교사역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무엇이 선교인가 하는 선교의 개념 정립에 논쟁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선교란 무엇이가에 대한 분명하고 단순한 해답이 가능했던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오늘날 신학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배경에 따라 나름대로의 선교개념을 가지고 선교를 말하고 있다.

       선교에 대한 옛날의 정의를 고수하는 입장을 취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현대의 포괄적인 선교 개념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다. 선교의 고전적 개념은 너무 좁기때문에 우리가 처한 삶의 정황에서 선교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의 넓어진 선교 개념으로는 우리를 추수꾼으로 부르신 주님에게 불순종하게 될 위험성이 따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를 듣는다.
   엇갈린 선교관, 즉 혼란된 선교 개념 때문에 선교에 대한 교회의 실제적인 노력은 더욱 더 모호한 것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선교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야기된 갈등과 혼란은 위험한 수위에 까지 이른 감이 든다. 타문화권 전도만을 선교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가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을 선교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같이 혼란된 선교 개념을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성경적인 선교관을 제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선교론들이 다 성경에 근거를 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선교에 대한 댜양한 관점들을 외면하고서는 선교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욱 활기 차게 선교를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진양이나 복음주의 진영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포괄적 선교 개념을 세계에 대한 교회의 역동적이며 기능적인 관계를 선교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의 성경적 근거를 다시 찾아 보기위해 선교 공동체인 교회와 세계 만민과의 관계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경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Ⅱ. 선교의 성경적 근거
 

     '선교'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용어이다. 선교는 라틴어 동사 mitteer(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단어의 어원으로 하고 있다. 영어로 선교를 의미하는 mission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파송되는 것을 뜻한다. 영어의 mission(선교)와 missionary(선교사)는 라틴어 mitto에서 유래된 말인다. 그 의미는 '보냄을 받은자'라는 뜻이다.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실 때에 복음을 듣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복음전도자를 파송하신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들과 활동들을 할 수 있지만, 궁극적 목표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어야 한다.

        성경적 의미로 '복음'이란 말은 사도들의 설교인 기쁜 소식을 말한다. 초대 교회의 전도 (Kerygma, 케리그마)에는 메시야이신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및 승천, 성령 강림, 예수의 재림, 회개와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확신, 그리고 성령의 은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스데반, 베드로, 바울 등이 전한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다. 이 복음은 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고린도, 로마와 그 변경 여러 곳에 전해진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의 메시지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오늘도 이 복음을 확신하고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선교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다.

       인간은 죄로 인해 구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구약 성경은 구속의 예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어 이 구속의 예언을 들을 수 있게 해주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갈 4:4).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인간의 삶에 동참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대속의 역사를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그가 영광의 주가 되심을 알려주셨다.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대속을 성취하셨다. 부활과 더블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적 승리는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이 발용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 세상에는 어떤 교회도, 어떤 선교 운동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가 예수님의 부활을 선교의 기초로 말한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죄와 사망이 정복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든 족속들에게 침투해 들어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명령을 받게 되었다(마 28:18-; 막16:15; 눅24:44-49; 요20:21-23; 행1:8).

        예수님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가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그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높임을 받으셨다(빌2:8-11). 영광의 위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능력 있게 전파하도록 제자들을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무장시켜 주셨다. 사도행전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알려주는 선교 역사의 첫 장이라 할 수 있다.

        오순절 날에 임한 성령 세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적이다. 능력 있는 복음증거 (행2:37-41, 4:33), 사죄의 기쁜 소식(행2:38), 하나님의 치료(행3:1-11)악령의 권세들을 제압하는 승리(행4: - 5:)가 있었다. 요한복음이나 사도행전에는 구원의 은총을 표현하는 말로 대치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는 구속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 그렇게도 자주 쓰여진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란 말이 요한 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겨우 몇 번만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이 이방 세계로 들어가면서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용어로 들릴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도들은 다른 왕 예수를 전한다고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행17:7-8).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인 것이거나 경제적인 것이 나라는 정치적인 것이거나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됨과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변증이 필요하였던 것이다(롬14:17).

        신약성경이 의미하는 하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인격과 삶이 변화되며,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몸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증보자가 되신 것 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모든 사람사이에서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케 하는 일에 봉사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의 남은 고난을 그 몸에 채우도록 위임받고 파송팓은 종의 공동체이며 선교 공동체이다(골1:24).

Ⅲ. 성경적 의미의 선교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를 알지 못하여 아직도 그를 주와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 모든 족속들로 하여금 믿어 순종케 하려고 문화적인 경계를 넘어 가서 택하신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 들이는 활동을 선교라고 말한다. 교회의 서교적 과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위임받은 구원과 심판의 완성을 위하여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위임받은 구원과 심판의 완성을 위하여 재림하실 것이다(행17:31). 이것은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이며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이다(딤2:13).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승리로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칠때 교회는 그의 선교적인 목표가 최종적으로 실현되었음을 알게 될것이다(고전15:24).

        그러므로 교회는 온 세상온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온 세상이란 말은 동일 문화권, 유사 문화권, 타 문화권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누가 전할 것인가?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막16:15).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또는 구속적 통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선교신학에서 깊이 다루어지고 있다.

        선교의 성경적 근거를 원만하게 이해할 때 선교의 정의들이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 위에 설정된 것인지, 아니면 부분적인 본문에 의존하여 내린 정의인지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인 선교관은 성경의 일관된 주제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와 선교적인 기독론과 교회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화란 선교학자인 베르쿠일(Johannes Verkuyl)은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 그것을 점점 더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 곧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일에 관련된 활동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에큐메니칼 선교 신학자인 휘체돔(Georg F. Vicedom)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 전체의 견해를 따라서 볼 때 하나님은 단 한 가지 의도, 즉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의도만 가지고 있다. ... 선교란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선교를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선포하는 일에 관련된 활동으로 볼 때에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따르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 또는 구원을 개인적으로 적용시킬 것인가, 아니면 사회-정치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선교 역사가 말해 주듯이 경건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나라 사상을 개인 주의적으로 해석하여 그 나라에로 부름 받은 사람들만을 얻으려고 했었다. 반면에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사회복음(social gospel)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20세기 중반부터 표출되기 시작한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간의 선교 신학 논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에큐메니칼 측은 선교의 수평적 차원에 치중한 나머지 수직적 차원을 상실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복음주의 측은 선교의 수직적 차원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여 수평적 차원인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선교의 목표가 복음화(Evangelization)냐 인간화(Humanization)냐의 양극화 현상은 양 진영의 선교관을 보다 성숙한 단계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쌍방이 건설적인 비평을 받아들여 선교의 수직적(하나님과의 관계) 및 수평적(인간과의 관계)차원을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한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을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회심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난 아직도 선교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일방성과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양 진영이 꼭 같다.

        이런 상황을 열두해 두고 여러가지 선교에 대한 정의들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적 의미의 선교관을 원만하게 반영하는 정의는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지 심각한 숙를 요청한다. 우리가 경험한 선교에 대한 양극화 현상과 첨예한 논쟁은 복음주의 진영이나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다 같이 선교의 수직적 및 수평적 차원을 균형있게 포괄하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오늘날 일부 극우적인 근본주의자들과 선교의 고전적 의미에 의도적으로 집착하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총체적 선교관을 받아들인다. 총체적 선교관이란 선교를 전도와 사회 활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전도의 우선성과 열정은 유지하면서 역사와 세계에 대한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선교의 수직적 차원인 복음화와 수평적 차원인 인간화를 다 포괄하는 수정되고 넓어진 복음주의자들의 선교 개념이다.

        전도(지상명령에 근거한)와 사회 활동 및 봉사(사랑의 계명에 근거한)를 이분화하지 않고 하나의 명령으로 볼 수 있게 된것이다. 개개인이 생존하고 있는 사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또는 구원을 개인의 영적 차원이나 사회-정치적 범주에 맞추어서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여 양극단으로 기울게 하는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선교의 성경적 근거에 관한 총체적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균형 잡힌 선교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의 선교적 교회를 섬기는 우리들의 사명이다.

        전도와 사회적 책임 간의 긴장과 이로 인한 소모적인 양극화 현상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개도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포함한다는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Ⅳ. 선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
 

        문제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 있다. 복음전도를 사회 활동에 대립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선교에 있어서 우선 사항은 언제나 구체적인 상황과 결부되기 때문에 우선 사항들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는 가능하지 않다.

        로잔 선언문(1974)은 "복음 전도와 사회-정치적 활동은 둘 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의 일부이다."라는 진술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선교에서 복음 전도가 일차적인 것이다"라는 진술을 덧붙이고 있다(6항).

        1982년 그랜드 래피즈에서 열린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에 대한 협의회'는 전도의 우선성을 확인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라는 바로 그 사실은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전제로 하며, 그들이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은 복음 전도와 훈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둘째로, 복음 전도는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 ... 모든 인류에게 최고로 또한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원하고 영적인 구원이 일시적이고 물질적인 복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마닐라 대회(1989)의 선언문도 유사한 진술을 담고 있다. '복음 전도가 우선적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복음, 곧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일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복음 전도의 우선성만 재 강조했을 뿐이지,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는 규명하지 않고 있다.

        그랜드 래피즈 협의회(1982)는 이 관계에 대해 세가지 사항을 분명히 했다. 첫째로, '사회 활동은 복음 전도의 결과이다.' 둘째로, '사회적 활동은 복음 전도에 이르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로, '사회 활동은 복음 전도의 결과와 목표로서 그 뒤를 따르며 또한 그것의 교량으로서 복음 전도에 선행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의 동반자로서 그것에 수반된다. 그것들은 가위의 양 날 혹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 이러한 동반자 관계는 실상 결혼 관계와도 같다.' 그리스도인의 세상 에서의 섬김은 복음 전도와 사회 활동 둘다를 포함한다는데는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선교에 대한 이러한 포괄적인 개념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 선교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잠재적으로 기독교 선교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교사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고 제자 훈련을 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그들의 우선적인 임무들로부터 빗나가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정치적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선교를 타문화권 전도로 이해하는 전통적 선교 개념을 그대로 간직할 것을 촉구한다.

        선교는 증거와 섬김을 위해 세상에 보냄 받은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선교는 그리스도의 선교를 모델로 해야 한다. 선교사들의 사역이 전도 외에 다른 것들에 기울어질 것을 염려하여 선교를 전도로만 한정하는 것은 교회의 선교 사역에 균형을 깨뜨리게 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선교 사역이 전도, 제자훈련, 교회 개척, 의료 봉사, 교육 사업, 지역 개발, 성경 번역, 사외 사업등 여러 가지를 포함하면서도 그 모든 활동이 항상 복음화를 그 목표로 삼아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복음화를 통해서만 효과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진정한 근거가 이루어 질 수 있다.

        선교에 전도와 사회적 활동 둘을 다 포함 한다 할지라도, 강조점이 복음 전도에 있지 않으면 교회의 선교 사명 수행에 심대한 손상을 끼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것이 선교의 목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교가 다양한 사역들을 포함하면서도 전도와 같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총체적 선교' 또는 '전도와 사회적 활동 간의 동반자 관계의 선교'라는 이름으로 전통적 선교가 지향한 모든 족속으로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일에 손해를 깨쳐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며, 죄와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에 따라 선교의 동기, 목표, 그리고 방편이 달라지게 된다. 전통적인 선교 개념과 실천적의 옹호자들도 선교를 전도로만 보지 않고 전도를 위해 교육, 의료, 농업 개발, 사회 참여, 정의 구현, 사회 봉사, 문서 선교 등을 선교 활동에 포함시키고 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우선해야 할 사항이 다를 수 있지만, 어느 시대 어떠한 환경에서도 모든 족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을 선교의 목표로 삼고 활동해야 한다.

        선교를 '하나님이 이 세계 안에서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일' 또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로' 그 개념을 넓혀버릴 때 선교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게 할 것이라는 우려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구두 전달과 사회적 활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전도와 사회적 활동을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일로 보지 말고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본다면, 선교의 포괄적 정의를 받아들여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Ⅴ. 맺는 말
 

        예수님께서도 가르치심과 행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행동으로 설명되었으며, 예수님의 행하심은 그의 말씀을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말씀과 행하심은 하나의 증거 사역으로 결합되어 있었으며, 상호 지지했다. 말은 사람의 행동으로 구체화 될 때까지는 추상적인 것으로 남게 되고, 행동은 말로 해석될 때까지는 모호한 체로 남아 있게 된다. 말이 없는 행동은 명료성이 없으며,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신빙성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행하심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으며, 예수님의 행동은 그의 말씀을 가시화시켰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 또한 예수님의 선교를 모델로 하여 말과 행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선교와 전도를 다른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 전도도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고, 선교 또한 말과 행동으로 지구상의 모든 족속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전도가 의미하며 목표하는 것을 떠난 선교란 있을 수 없다. 전도가 아닌 선교는 진정한 선교가 아니며,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본질을 상실한 교회이다.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문화권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들을 권하여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며, 그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전도 와 정의의 실현에 참여켜 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Donald A. McGav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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